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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사회교리 (한글+영어)











a. God's dominion / 하느님의 통치


377. At the beginning of its history, the people of Israel are unlike other peoples in that they have no king, for they recognize the dominion of Yahweh alone. It is God who intervenes on Israel's behalf through charismatic individuals, as recorded in the Book of Judges. The people approach the last of these individuals, Samuel, prophet and judge, to ask for a king (cf. 1 Sam 8:5; 10:18-19). Samuel warns the Israelites about the consequences of a despotic exercise of kingship (cf. 1 Sam 8:11-18). However, the authority of the king can also be experienced as a gift of Yahweh who comes to the assistance of his people (cf. 1 Sam 9:16). In the end, Saul is anointed king (cf. 1 Sam 10:1-2). These events show the tension that brought Israel to understand kingship in a different way than it was understood by neighbouring peoples. The king, chosen by Yahweh (cf. Dt 17:15; 1 Sam 9:16) and consecrated by him (cf. 1 Sam 16:12-13), is seen as God's son (cf. Ps 2:7) and is to make God's dominion and plan of salvation visible (cf. Ps 72). The king, then, is to be the defender of the weak and the guarantor of justice for the people. The denunciations of the prophets focus precisely on the kings' failure to fulfil these functions (cf. 1 Kg 21; Is 10:1-4; Am 2:6-8, 8:4-8; Mic 3:1-4).

377. 역사의 시초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주님의 통치만을 인정하므로 왕을 모시지 않는다. 판관기의 기록에 따르면, 은사를 받은 개인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개입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 인물인 예언자며 판관인 사무엘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1사무 8,5; 10,18-19 참조).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제적인 왕권 행사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경고한다(1사무 8,11-18 참조). 그러나 왕의 권위는 또한 당신 백성을 도우러 오시는 주님의 선물로 체험될 수도 있다.(1사무 9,16 참조). 결국,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다(1사무 10,1-2 참조). 이러한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을 이해하게 된 연유를 보여준다. 주님께서 선택하시고(신명 17,15; 1사무 9,16 참조) 주님께서 축성하시는(1사무 16,12-13 참조) 왕은, 하느님의 아들로 간주되며(시편 2,7 참조) 하느님의 통치와 구원 계획을 드러내야 한다(시편 71[72] 참조). 그러므로 왕은, 약한 이들의 수호자이며 백성을 위한 정의의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언자들의 비난은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왕들에게 집중된다(1열왕 21; 이사 10,1-14; 아모 2,6-8; 8,4-8; 미카 3,1-4 참조).


378. The prototype of the king chosen by Yahweh is David, whose humble origins are a favourite topic of the biblical account (cf. 1 Sam 16:1-13). David is the recipient of the promise (cf. 2 Sam 7:13-16; Ps 89:2-38, 132:11-18), which places him at the beginning of a special kingly tradition, the “messianic” tradition. Notwithstanding all the sins and infidelities of David and his successors, this tradition culminates in Jesus Christ, who is par excellence “Yahweh's anointed” (that is, “the Lord's consecrated one”, cf. 1 Sam 2:35, 24:7,11, 26:9,16; Ex 30:22-32), the son of David (cf. Mt 1:1-17; Lk 3:23-38; Rom 1:3).

378. 주님께서 고르신 왕의 원형은 다윗으로서, 그의 비천한 출신은 성경 이야기에 즐겨 나오는 주제이다(1사무 16,1-13 참조). 다윗은 계약의 수탁인(2사무 7,13-16; 시편 89,2-38; 132,11-18 참조)이며, 이로써 그는 특별한 왕의 전통, 메시아의 전통을 시작하게 된다. 다윗과 그 후손들의 온갖 죄와 불신에도, 이 전통은 탁월하게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주님의 축성을 받은 사람’, 1사무 2,35; 24,7.11; 26,9.16; 탈출 30,22-32 참조)이며 다윗의 후손(마태 1,1-17; 루카 3,23-38; 로마 1,3 참조)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정점에 이른다.


The failure of kingship on the historical level does not lead to the disappearance of the ideal of a king who, in fidelity to Yahweh, will govern with wisdom and act in justice. This hope reappears time and again in the Psalms (cf. Ps 2, 18, 20, 21, 72). In the messianic oracles, the figure of a king endowed with the Lord's Spirit, full of wisdom and capable of rendering justice to the poor, is awaited in eschatological times (cf. Is 11:2-5; Jer 23:5-6). As true shepherd of the people of Israel (cf. Ezek 34:23-24, 37:24), he will bring peace to the nations (cf. Zech 9:9-10). In Wisdom Literature, the king is presented as the one who renders just judgments and abhors iniquity (cf. Prov 16:12), who judges the poor with equity (cf. Prov 29:14) and is a friend to those with a pure heart (cf. Prov 22:11). There is a gradual unfolding of the proclamation of what the Gospels and other New Testament writings see fulfilled in Jesus of Nazareth, the definitive incarnation of what the Old Testament foretold about the figure of the king.

역사적으로 왕들의 통치가 실패했다고 해서, 주님께 충실하며 지혜롭게 다스리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왕의 이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희망은 시편에 거듭 다시 나타난다(시편 2.17[18].19[20].20[21].71[72]장 참조). 메시아의 신탁에 따르면, 종말론적 시기에는 주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충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 줄 아는 왕의 모습을 기다린다(이사 11,2-5; 예레 23,5-6 참조).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목자(에제 34,23-24; 37,24 참조)인 왕은 만민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에제 9,9-10 참조). 지혜서들에서 왕은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고 부정을 싫어하는 사람(잠언 16,12 참조), 가난한 이들을 공평하게 재판하는 사람(잠언 29,14 참조), 마음이 깨끗한 이들의 벗(잠언 22,11 참조)으로 제시된다. 복음서와 다른 신약 성경의 글들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 왕의 모습에 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의 결정적인 구현이 점차 선포된다.



b. Jesus and political authority / 예수님과 정치적 권위


379. Jesus refuses the oppressive and despotic power wielded by the rulers of the nations (cf. Mk 10:42) and rejects their pretension in having themselves called benefactors (cf. Lk 22:25), but he does not directly oppose the authorities of his time. In his pronouncement on the paying of taxes to Caesar (cf. Mk 12:13-17; Mt 22:15-22; Lk 20:20-26), he affirms that we must give to God what is God's, implicitly condemning every attempt at making temporal power divine or absolute: God alone can demand everything from man. At the same time, temporal power has the right to its due: Jesus does not consider it unjust to pay taxes to Caesar.

379. 예수님께서는 민족의 통치자들이 휘두르는 압제와 전제의 권력을 거부하시고(마태 10,42 참조), 은인으로 행세하는 그들을 거부하시지만(루카 22,25 참조), 그 시대의 권위들에게 직접 반대하시지는 않는다. 카이사르에게 바칠 세금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마르 12,13-17; 마태 22,15-22; 루카 20,20-26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고 단언하신다. 이것은 세속의 권력을 하느님의 권력, 절대 권력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암묵적인 단죄이다. 하느님께서만 인간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실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세속의 권력은 그에 합당한 권리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도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부당하다고 보지 않으신다.


Jesus, the promised Messiah, fought against and overcame the temptation of a political messianism, characterized by the subjection of the nations (cf. Mt 4:8-11; Lk 4:5-8). He is the Son of Man who came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Mk 10:45; cf. Mt 20:24-28: Lk 22:24-27). As his disciples are discussing with one another who is the greatest, Jesus teaches them that they must make themselves least and the servants of all (cf. Mk 9:33- 35), showing to the sons of Zebedee, James and John, who wish to sit at His right hand, the path of the cross (cf. Mk 10:35-40; Mt 20:20-23).

약속된 메시아인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예속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시어 이를 물리치셨다(마태 4,8-11; 루카 4,5-8 참조). 예수님께서는 섬기러 왔고 목숨을 바치러”(마르 10,45; 마태 20,24-28; 루카 22,24-27 참조) 오신 사람의 아들이시다.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인지를 두고 서로 논쟁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낮은 사람,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마르 9,33-35 참조),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고 싶어 하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십자가의 길을 보여주신다.(마르 10,35-40; 마태 20,20-23 참조).



c. The early Christian communities /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


380. Submission, not passive but “for the sake of conscience” (Rom 13:5), to legitimate authority responds to the order established by God. Saint Paul defines the relationships and duties that a Christian is to have towards the authorities (cf. Rom 13:1-7). He insists on the civic duty to pay taxes: “Pay all of them their dues, taxes to whom taxes are due, revenue to whom revenue is due, fear to whom fear is due, respect to who respect is due” (Rom 13:7). The Apostle certainly does not intend to legitimize every authority so much as to help Christians to “take thought for what is noble in the sight of all” (Rom 12:17), including their relations with the authorities, insofar as the authorities are at the service of God for the good of the person (cf. Rom 13:4; 1 Tim 2:1-2; Tit 3:1) and “to execute [God's] wrath on the wrongdoer” (Rom 13:4).

380. 소극적 복종이 아닌 양심을 따르기 위하여(로마 13,5) 합법적인 권위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르는 것이다. 바오로 성인은 그리스도인이 권위에 대하여 가져야 할 관계와 의무를 규정하며(로마 13,1-7 참조), 시민의 납세 의무를 강조한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국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는 국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사람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사람은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은 존경하십시오”(로마 13,7).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위와 맺는 관계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로마 12,17) 권장할 만큼 모든 권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며(로마 13,4; 1디모 2,1-2; 티토 3,1 참조)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주는”(로마 13,4) 권위일 때에만 정당하다.


Saint Peter exhorts Christians to “be subject for the Lord's sake to every human institution” (1 Pet 2:13). The king and his governors have the duty “to punish those who do wrong and to praise those who do right” (1 Pet 2:14). This authority of theirs must be “honoured” (1 Pet 2: 17), that is, recognized, because God demands correct behaviour that will “silence the ignorance of foolish men” (1 Pet 2:15). Freedom must not be used as a pretext for evil but to serve God (cf. 1 Pet 2:16). It concerns free and responsible obedience to an authority that causes justice to be respected, ensuring the common good.

베드로 성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복종하도록권고한다. “그것은 주님을 위하는 것”(1베드 2,13)이기 때문이다. 왕과 통치자는 악인을 처벌하고 선인을 표창할”(1베드 2,14) 의무가 있다. 이러한 그들의 권위는 존경”(1베드 2,17)받고, 말하자면 인정받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1베드 2,15) 올바른 행동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자유는 악을 행하는 구실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쓰여야 한다(1베드 2,16 참조). 공동선을 보장하면서 정의가 존중받도록 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순종과 관련된다.


381. Praying for rulers, which Saint Paul recommended even as he was being persecuted, implicitly indicates what political authority ought to guarantee: a calm and tranquil life led with piety and dignity (cf. 1 Tim 2:1-2). Christians must “be ready for any honest work” (Tit 3:1), showing “perfect courtesy towards all” (Tit 3:2), in the awareness that they are saved not by their own deeds but by God's mercy. Without “the washing of regeneration and renewal in the Holy Spirit, which he poured out upon us richly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ur” (Tit 3:5-6), all people are “foolish, disobedient, led astray, slaves to various passions and pleasures, passing [their] days in malice and envy, hated by men and hating one another” (Tit 3:3). We must not forget the miserable state of the human condition marred by sin, but redeemed by God's love.

381. 박해받는 중에도 바오로 성인이 권유하였던 통치자들을 위한 기도는, 정치 권위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암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경건하고 근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디모 2,1-2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착한 일을 할 수 있어야”(티토 3,1) 하며, 자신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받음을 인식하고 모든 사람을 언제나 온유하게 대하는”(티토 3,2) 태도를 지녀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신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 나게 하시고 새롭게 해주시지”(디모 3,5-6 참조)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미련하고 순종할 줄 모르며 자주 잘못된 길로 빠지고 온갖 욕정과 쾌락의 종이 되고 악과 시기로 세월을 보내고 남에게 증오를 받고 서로 미워하면서 살게”(티토 3,3 참조) 된다. 우리는 죄로 얼룩진,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인간 조건의 비참한 상태를 잊어서는 안 된다.


382. When human authority goes beyond the limits willed by God, it makes itself a deity and demands absolute submission; it becomes the Beast of the Apocalypse, an image of the power of the imperial persecutor “drunk with the blood of the saints and the blood of the martyrs of Jesus” (Rev 17:6). The Beast is served by the “false prophet” (Rev 19:20), who, with beguiling signs, induces people to adore it. This vision is a prophetic indication of the snares used by Satan to rule men, stealing his way into their spirit with lies. But Christ is the Victorious Lamb who, down the course of human history, overcomes every power that would make it absolute. Before such a power, Saint John suggests the resistance of the martyrs; in this way, believers bear witness that corrupt and satanic power is defeated, because it no longer has any authority over them.

382. 인간의 권위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한계를 벗어날 때, 스스로를 신격화하여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피와 예수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의 피에 취해 있는”(묵시 17,6) 오만한 박해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묵시록의 짐승이 된다. 이 짐승을 섬기는 거짓 예언자”(묵시 19,20), 현혹하는 표지들로 사람들을 꾀어 이 짐승을 섬기게 한다. 이러한 모습은, 사탄이 거짓으로 인간의 마음에 슬며시 들어와 인간을 꾈 때 쓰는 덫을 예언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승리의 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역사에 걸쳐서 스스로를 절대 권력으로 높이려는 모든 권력을 물리치신다. 그러한 권력 앞에서, 요한 성인은 순교자들의 저항을 암시한다. 이렇게 하여, 믿는 이들은 부패한 사탄의 권력은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권위도 내세울 수 없으므로 패배한 것임을 증언한다.


383. The Church proclaims that Christ, the conqueror of death, reigns over the universe that he himself has redeemed. His kingdom includes even the present times and will end only when everything is handed over to the Father and human history is brought to completion in the final judgment (cf. 1 Cor 15:20-28). Christ reveals to human authority, always tempted by the desire to dominate, its authentic and complete meaning as service. God is the one Father, and Christ the one Teacher, of all mankind, and all people are brothers and sisters. Sovereignty belongs to God. The Lord, however, “has not willed to reserve to himself all exercise of power. He entrusts to every creature the functions it is capable of performing, according to the capacities of its own nature. This mode of governance ought to be followed in social life. The way God acts in governing the world, which bears witness to such great regard for human freedom, should inspire the wisdom of those who govern human communities. They should behave as ministers of divine providence”.[773]

383. 교회는 죽음을 물리쳐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구원하신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선포한다. 그분의 나라는 지금 이 시대도 포함하며, 모든 것이 아버지께 돌아가고 인간 역사가 최후의 심판으로 완성될 때에야 끝이 날 것이다(1코린 15,20-28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지배욕의 유혹을 받는 인간 권위에게 권위의 참되고 완전한 의미는 봉사에 있음을 드러내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한 분이신 아버지이시며, 그리스도께서는 한 분이신 스승이시고, 모든 사람은 형제자매들이다. 주권은 하느님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권능 행사를 하느님 혼자서만 차지하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각 피조물들에게 그의 본성의 능력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기능을 맡기신다. 인간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를 철저하게 존중하시는 하느님의 통치 방식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은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The biblical message provides endless inspiration for Christian reflection on political power, recalling that it comes from God and is an integral part of the order that he created. This order is perceived by the human conscience and, in social life, finds its fulfilment in the truth, justice, freedom and solidarity that bring peace.[774]

성경 메시지는 정치권력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구성하는 한 부분임을 상기시키면서, 정치권력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성찰에 무한한 영감을 준다. 이러한 질서는 인간의 양심으로 인식되며, 평화의 도구인 진리와 정의, 자유, 연대를 통하여 사회생활 안에서 완성된다.






a. Political community, the human person and a people / 정치 공동체, 인간, 그리고 민족


384. The human person is the foundation and purpose of political life.[775] Endowed with a rational nature, the human person is responsible for his own choices and able to pursue projects that give meaning to life at the individual and social level. Being open both to the Transcendent and to others is his characteristic and distinguishing trait. Only in relation to the Transcendent and to others does the human person reach the total and complete fulfilment of himself. This means that for the human person, a naturally social and political being, “social life is not something added on” [776] but is part of an essential and indelible dimension.

384. 정치 생활의 토대와 목적은 인간이다. 이성을 타고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계획들을 추구할 수 있다. 초월자와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는 것은 인간을 특징짓는 독특한 특성이다. 초월자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 안에서만 인간은 전적이고 완전한 자기 완성에 이른다. 이는 본래 사회적 정치적 존재인 인간에게 사회생활은 인간에게 덧붙여진 우연한 그 무엇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차원의 일부임을 뜻한다.


The political community originates in the nature of persons, whose conscience “reveals to them and enjoins them to obey” [777] the order which God has imprinted in all his creatures: “a moral and religious order; and it is this order and not considerations of a purely extraneous, material order which has the greatest validity in the solution of problems relating to their lives as individuals and as members of society, and problems concerning individual States and their interrelations”.[778] This order must be gradually discovered and developed by humanity. The political community, a reality inherent in mankind, exists to achieve an end otherwise unobtainable: the full growth of each of its members, called to cooperate steadfastly for the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779] under the impulse of their natural inclinations towards what is true and good.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양심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에 새겨놓으신 질서를 인간에게 일깨우고 이를 따르도록 요구한다.” 도덕적 종교적인 질서, 순전히 외적이고 물질적인 질서가 아닌 이러한 질서는 개인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삶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개별 국가와 국가 상호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가장 큰 효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이 질서를 차츰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인류의 고유한 실재인 정치 공동체는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적, 곧 진리와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이끌려 공동선 달성을 위하여 확고히 협력하도록 요청받는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한다.


385. The political community finds its authentic dimension in its reference to people: “it is and should in practice be the organic and organizing unity of a real people”.[780] The term “a people” does not mean a shapeless multitude, an inert mass to be manipulated and exploited, but a group of persons, each of whom “at his proper place and in his own way” [781] is able to form its own opinion on public matters and has the freedom to express its own political sentiments and to bring them to bear positively on the common good. A people “exists in the fullness of the lives of the men and women by whom it is made up, each of whom ... is a person aware of his own responsibilities and convictions”.[782] Those who belong to a political community, although organically united among themselves as a people, maintain an irrepressible autonomy at the level of personal existence and of the goals to be pursued.

385. 정치 공동체는 인간을 준거로 삼는 데에서 그 참된 차원을 발견한다. “정치 공동체는 참된 민족의 유기적이며 조직적인 일치이고 또한 실제로 그래야 한다.”민족이라는 말은 무형의 다수, 조종당하고 착취당하는 수동적인 대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고유한 위치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고,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며 그것이 공동선에 긍정적인 결과를 맺도록 하는 개인들의 집단이다. 민족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충만한 삶 안에 존재하며, 이들 각자는 자신의 책임과 신념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이다.” 정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한 민족으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만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추구할 목적에 대하여 억압할 수 없는 자율을 유지한다.


386. The primary characteristic of a people is the sharing of life and values, which is the source of communion on the spiritual and moral level. “Human society must primarily be considered something pertaining to the spiritual. Through it, in the bright light of truth men should share their knowledge, be able to exercise their rights and fulfil their obligations, be inspired to seek spiritual values, mutually derive genuine pleasure from beauty of whatever order it be, always be readily disposed to pass on to others the best of their own cultural heritage and eagerly strive to make their own the spiritual achievements of others. These benefits not only influence but at the same time give aim and scope to all that has bearing on cultural expressions, economic and social institutions, political movements and forms, laws, and all other structures by which society is outwardly established and constantly developed”.[783]

386. 민족의 근본 특징은 삶과 가치의 공유이며, 이는 영적 도덕적 차원에서 친교의 근원이 된다. “인간 사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인 실재로 간주되어야 한다. 사회를 통하여 인간은 진리의 빛 안에서 학식을 교환하고, 권리를 행사하며, 의무를 이행하고,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에서 서로 참된 즐거움을 이끌어 내고, 자신들의 가장 뛰어난 문화적 유산을 언제나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며, 다른 사람들의 영성적 업적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 거기에서 얻는 이득들은 문화적 표현, 경제 사회 제도들, 정치 운동과 형태, 법률, 그리고 외적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다른 모든 조직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것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387. For every people there is in general a corresponding nation, but for various reasons national boundaries do not always coincide with ethnic boundaries.[784] Thus the question of minorities arises, which has historically been the cause of more than just a few conflicts. The Magisterium affirms that minorities constitute groups with precise rights and duties, most of all, the right to exist, which “can be ignored in many ways, including such extreme cases as its denial through overt or indirect forms of genocide”.[785] Moreover, minorities have the right to maintain their culture, including their language, and to maintain their religious beliefs, including worship services. In the legitimate quest to have their rights respected, minorities may be driven to seek greater autonomy or even independence; in such delicate circumstances, dialogue and negotiation are the path for attaining peace. In every case, recourse to terrorism is unjustifiable and damages the cause that is being sought. Minorities are also bound by duties, among which, above all, is working for the common good of the State in which they live. In particular, “a minority group has the duty to promote the freedom and dignity of each one of its members and to respect the decisions of each one, even if someone were to decide to adopt the majority culture”[786].

387. 모든 민족에는 일반적으로 해당 국가가 있지만, 다양한 이유 때문에 국가의 경계가 언제나 민족의 경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소수 민족의 문제가 제기되며, 이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분쟁의 이유가 되어 왔다. 교도권은 소수 민족도 분명한 권리와 의무들을 지닌 집단임을 단언한다. 그 가운데에도 생존권은 수많은 방법으로 무시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공공연한 살육이나 간접적인 인종 학살을 통하여 그 생존의 권리를 부정하기도 한다.” 또한, 소수 민족은 그들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를 유지하고, 예배를 포함한 종교적 신념을 지킬 권리가 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받기 위한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소수 민족은 더욱 큰 자율성이나 나아가 독립까지도 원할 수 있다. 그러한 미묘한 상황에서는 대화와 협상이 평화에 이르는 길이 된다. 어떤 경우라도, 테러에 의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는 추구하는 목적을 손상할 뿐이다. 소수 민족은 또한 의무를 지니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살고 있는 국가의 공동선을 위하여 일할 의무가 있다. 특히, “그 구성원 각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증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비록 어느 누가 다수 집단의 문화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하더라도, 각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b. Defending and promoting human rights / 인권 보호와 증진


388. Considering the human person as the foundation and purpose of the political community means in the first place working to recognize and respect human dignity through defending and promoting fundamental and inalienable human rights: “In our time the common good is chiefly guaranteed when personal rights and duties are maintained”.[787] The rights and duties of the person contain a concise summary of the principal moral and juridical requirements that must preside over the construction of the political community. These requirements constitute an objective norm on which positive law is based and which cannot be ignored by the political community, because both in existential being and in final purpose the human person precedes the political community. Positive law must guarantee that fundamental human needs are met.

388. 인간을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다. “현대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난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는 정치 공동체의 건설을 위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도덕적 법적 조건들이 간결하게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객관적 규범으로서, 이를 토대로 실정법이 세워진다. 인간은 실존적 존재로서나 최종 목적에서 정치 공동체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정치 공동체는 이 규범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실정법은 인간의 근본 욕구를 충족시켜 주도록 보장해야 한다.


389. The political community pursues the common good when it seeks to create a human environment that offers citizens the possibility of truly exercising their human rights and of fulfilling completely their corresponding duties. “Experience has taught us that, unless these authorities take suitable action with regard to economic, political and cultural matters, inequalities between citizens tend to become more and more widespread, especially in the modern world, and as a result human rights are rendered totally ineffective and the fulfilment of duties is compromised”.[788]

389. 정치 공동체는 국민들이 인간의 권리를 참되게 실천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들을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는 인간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고자 노력함으로써 공동선을 추구한다. “사실 경험이 증명하듯이, 국민들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에 대해 공권력이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특히 오늘날에는 위기 상황이 더욱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인간의 기본 권리들은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며, 또한 개인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도 위험에 놓이게 될 것이다.”


The full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 requires that the political community develop a twofold and complementary action that defends and promotes human rights. “It should not happen that certain individuals or social groups derive special advantage from the fact that their rights have received preferential protection. Nor should it happen that governments in seeking to protect these rights, become obstacles to their full expression and free use”.[789]

공동선을 온전히 달성하려면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이중의 보완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권리 보호에만 관심을 두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을 보호하고자 하면서 정부가 그러한 권리들을 온전히 표현하고 자유롭게 행사하는 데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c. Social life based on civil friendship / 시민 우애를 바탕으로 한 사회생활


390. The profound meaning of civil and political life does not arise immediately from the list of personal rights and duties. Life in society takes on all its significance when it is based on civil friendship and on fraternity.[790] The sphere of rights, in fact, is that of safeguarded interests, external respect, the protection of material goods and their distribution according to established rules. The sphere of friendship, on the other hand, is that selflessness, detachment from material goods, giving freely and inner acceptance of the needs of others.[791] Civil friendship [792] understood in this way is the most genuine actualization of the principle of fraternity, which is inseparable from that of freedom and equality.[793] In large part, this principle has not been put into practice in the concrete circumstances of modern political society, above all because of the influence of individualistic and collectivistic ideologies.

390. 시민 정치 생활의 심오한 의미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나열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은 시민 우애와 형제애를 바탕으로 할 때 그 중요한 의미를 띤다. 사실, 권리의 본분은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외적으로 존중하며, 물질 재화를 보호하고 규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다. 반면 우애의 본분은 이기적이지 않고, 물질 재화에 집착하지 않으며, 후하게 베풀고, 다른 이들의 요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되는 시민 우애 자유와 평등의 원칙과 불가분인 형제애의 원칙을 가장 참되게 실현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상당 부분, 현대 정치 사회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천에 옮겨질 수 없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개인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사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391. A community has solid foundations when it tends toward the integral promotion of the person and of the common good. In such cases, law is defined, respected and lived according to the manner of solidarity and dedication towards one's neighbour. Justice requires that everyone should be able to enjoy their own goods and rights; this can be considered the minimum measure of love.[794] Social life becomes more human the more it is characterized by efforts to bring about a more mature awareness of the ideal towards which it should be oriented, which is the “civilization of love”.[795]

391. 공동체는 개인과 공동선의 전체적인 증진을 지향할 때 견고한 토대를 쌓게 된다. 그러한 경우, 연대와 이웃에 대한 헌신에 따라 법을 규정하고 존중하며 실천한다. 정의의 요구에 따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화와 권리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은 최소한의 사랑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회생활이 지향해야 할 사랑의 문화의 이상을 더욱 성숙하게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수록, 사회생활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The human being is a person, not just an individual.[796] The term “person” indicates “a nature endowed with intelligence and free will”: [797] he is therefore a reality that is far superior to that of a subject defined by the needs arising solely from his material dimension. The human person, in fact, although participating actively in projects designed to satisfy his needs within the family and within civil and political society, does not find complete self-fulfilment until he moves beyond the mentality of needs and enters into that of gratuitousness and gift, which fully corresponds to his essence and community vocation.

인간은 단순한 개체가 아닌 인격체이다.인격체라는 말은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 본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적 차원에서만 비롯되는 요구들로 규정되는 주체보다 훨씬 뛰어난 실재이다. 실제로, 인간은 가정과 시민 정치 사회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획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그러한 욕구 심리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과 공동체의 소명에 온전히 부합하는 거저 줌의 정신에 이를 때까지는 완전한 자기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392. The gospel precept of charity enlightens Christians as to the deepest meaning of political life. In order to make it truly human, “no better way exists ... than by fostering an inner sense of justice, benevolence and service for the common good, and by strengthening basic beliefs about the true nature of the political community and about the proper exercise and limits of public authority”.[798] The goal which believers must put before themselves is that of establishing community relationships among people. The Christian vision of political society places paramount importance on the value of community, both as a model for organizing life in society and as a style of everyday living.

392. 복음의 사랑의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 생활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일깨운다. 참으로 인간다운 정치생활을 위해서는, “정의와 사랑 그리고 공동선을 위한 봉사 정신을 길러 주고 정치 공동체의 진정한 성격과 공권력의 목적, 그 바른 행사와 한계 등에 관한 기본 신념을 북돋워 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믿는 이들이 내세워야 할 목표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치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사회생활을 구성하기 위한 전형이자 일상생활의 한 양식인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에 둔다.






a. The foundation of political authority / 정치 권위의 토대


393. The Church has always considered different ways of understanding authority, taking care to defend and propose a model of authority that is founded on the social nature of the person. “Since God made men social by nature, and since no society can hold together unless some one be over all, directing all to strive earnestly for the common good, every civilized community must have a ruling authority, and this authority, no less than society itself, has its source in nature, and has, consequently, God for its author”.[799] Political authority is therefore necessary [800] because of the responsibilities assigned to it. Political authority is and must be a positive and irreplaceable component of civil life.[801]

393. 교회는 언제나 권위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고려해 왔으며,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바탕으로 한 권위의 전형을 제시하고 보호하고자 애써 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본성상 사회적 존재로 만드셨고, 또한 모든 사회는 타인을 통치하는 자가 공동선을 향해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으므로, 문명화된 모든 공동체에는 통치 권위가 불가피하다. 이런 권위는 사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 권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정치 권위는 그 권위에 부여된 임무 때문에 필수적이다. 정치 권위는 시민 생활을 구성하는 긍정적이며 대체될 수 없는 요소이며, 또 그래야 한다.


394. Political authority must guarantee an ordered and upright community life without usurping the free activity of individuals and groups but disciplining and orienting this freedom, by respecting and defending the independence of the individual and social subjects, for the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 Political authority is an instrument of coordination and direction by means of which the many individuals and intermediate bodies must move towards an order in which relationships, institutions and procedures are put at the service of integral human growth. Political authority, in fact, “whether in the community as such or in institutions representing the State, must always be exercised within the limits of morality and on behalf of the dynamically conceived common good, according to a juridical order enjoying legal status. When such is the case citizens are conscience-bound to obey”.[802]

394. 정치 권위는 개인과 집단의 자유로운 활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자유를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며, 공동선의 달성을 위하여 개인과 사회 주체들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함으로써 질서 있고 올바른 공동체 생활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치 권위는 조정하고 지시하는 도구로서, 이를 통하여 많은 개인과 중간 단체들은 관계와 제도, 절차들이 전체적인 인간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는 질서를 지향하여야 한다. 실제로 정치 권위는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든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에서든 언제나 도덕 질서의 한계 안에서 정당하게 제정되었거나 제정될 법질서에 따라, 참으로 역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는, 공동선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할 때에 국민들은 양심에 따라 복종하여야 할 의무를 지닌다.”


395. The subject of political authority is the people considered in its entirety as those who have sovereignty. In various forms, this people transfers the exercise of sovereignty to those whom it freely elects as its representatives, but it preserves the prerogative to assert this sovereignty in evaluating the work of those charged with governing and also in replacing them when they do not fulfil their functions satisfactorily. Although this right is operative in every State and in every kind of political regime, a democratic form of government, due to its procedures for verification, allows and guarantees its fullest application.[803] The mere consent of the people is not, however, sufficient for considering “just” the ways in which political authority is exercised.

395. 정치 권위의 주체는 주권을 지닌 이들로 간주되는 국민 전체이다. 다양한 형태로,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들이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교체시킴으로써 이러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은 보존된다. 이러한 권리는 모든 국가와 모든 형태의 정치 체제에서 효력을 발휘하지만, 민주주의 정부는 확인 절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가 최대한 적용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보장해 준다. 그러나 국민들의 단순한 동의만으로는 정치 권위가 정당한방식으로 행사되고 있다고 간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b. Authority as moral force / 도덕적 힘인 권위


396. Authority must be guided by the moral law. All of its dignity derives from its being exercised within the context of the moral order,[804] “which in turn has God for its first source and final end”.[805] Because of its necessary reference to the moral order, which precedes it and is its basis, and because of its purpose and the people to whom it is directed, authority cannot be understood as a power determined by criteria of a solely sociological or historical character. “There are some indeed who go so far as to deny the existence of a moral order which is transcendent, absolute, universal and equally binding upon all. And where the same law of justice is not adhered to by all, men cannot hope to come to open and full agreement on vital issues”.[806] This order “has no existence except in God; cut off from God it must necessarily disintegrate”.[807] It is from the moral order that authority derives its power to impose obligations [808] and its moral legitimacy,[809] not from some arbitrary will or from the thirst for power,[810] and it is to translate this order into concrete actions to achieve the common good.[811]

396. 권위는 도덕률에 따라야 한다. 권위가 지니는 모든 존엄은 도덕 질서 안에서 행사됨으로써 비롯되며, 그 질서의 첫째 원리와 궁극적 목표는 하느님이다. 권위는, 권위에 앞서며 권위의 바탕이 되는 도덕 질서를 필요한 준거로 삼기 때문에, 또 목적이 있고, 국민을 지향하므로, 단순히 사회적 역사적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권력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초월적이고 절대적이며 보편적이고 또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구속력을 갖는 도덕 질서는 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의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결코 완전하고 전적인 합의에 이르기를 바랄 수 없다.” 이러한 질서는 오로지 하느님 안에 있으므로, 하느님을 떠나서는 필연적으로 도덕 질서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의무를 지우고 그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권위의 힘은 도덕 질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독단적인 의지나 권력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동선을 이루려면 이러한 질서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397. Authority must recognize, respect and promote essential human and moral values. These are innate and “flow from the very truth of the human being and express and safeguard the dignity of the person; values which no individual, no majority and no State can ever create, modify or destroy”.[812] These values do not have their foundation in provisional and changeable “majority” opinions, but must simply be recognized, respected and promoted as elements of an objective moral law, the natural law written in the human heart (cf. Rom 2:15), and as the normative point of reference for civil law itself.[813] If, as a result of the tragic clouding of the collective conscience, scepticism were to succeed in casting doubt on the basic principles of the moral law,[814] the legal structure of the State itself would be shaken to its very foundations, being reduced to nothing more than a mechanism for the pragmatic regulation of different and opposing interests.[815]

397. 권위는 본질적인 인간적 도덕적 가치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증진하여야 한다. 이 가치들은 인간 존재의 진리에서 흘러나오며, 인격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보호한다. 이 가치들은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다수의 것도 아니며, 국가가 만들어 내거나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오직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다수의의견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자연법인(로마 2,15 참조) 객관적 도덕률의 요소이자 국법 자체의 규범적 준거로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증진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집단의 양심이 흐려져서 회의주의가 도덕률의 기본 원칙들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면, 국가의 법 구조 자체가 그 토대부터 흔들릴 것이며, 국가는 대립하는 서로 다른 이익 집단들을 실무적으로 통제하는 하나의 장치로 전락하고 만다.


398. Authority must enact just laws, that is, laws that correspond to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 and to what is required by right reason. “Human law is law insofar as it corresponds to right reason and therefore is derived from the eternal law. When, however, a law is contrary to reason, it is called an unjust law; in such a case it ceases to be law and becomes instead an act of violence”.[816] Authority that governs according to reason places citizens in a relationship not so much of subjection to another person as of obedience to the moral order and, therefore, to God himself who is its ultimate source.[817] Whoever refuses to obey an authority that is acting in accordance with the moral order “resists what God has appointed” (Rom 13:2).[818] Analogously, whenever public authority which has its foundation in human nature and belongs to the order pre-ordained by God [819] fails to seek the common good, it abandons its proper purpose and so delegitimizes itself.

398. 권위는 공정한 법,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과 올바른 이성의 요구에 부응하는 법을 실행하여야 한다. “인간의 법은 그것이 올바른 이성에 부합하며 따라서 영원한 법에서 비롯되는 한, 법이다. 그러나 이성에 어긋나는 법은 부당한 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법이 아니며 하나의 폭력 행위에 불과하다.” 이성에 따라 다스리는 권위는 국민을 타인에게 종속된 관계로 두기보다는 도덕 질서에 대한 종속된, 따라서 그 궁극적 원천이신 하느님께 종속된 관계에 둔다. 도덕 질서에 따라 행동하는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든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거스르는”(로마 13,2)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질서에 속하는 공공 권위가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고유한 목적을 저버리고 따라서 스스로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c. The right to conscientious objection / 양심적 거부에 대한 권리


399. Citizens are not obligated in conscience to follow the prescriptions of civil authorities if their precepts are contrary to the demands of the moral order, to the fundamental rights of persons or to the teachings of the Gospel.[820] Unjust laws pose dramatic problems of conscience for morally upright people: when they are called to cooperate in morally evil acts they must refuse.[821] Besides being a moral duty, such a refusal is also a basic human right which, precisely as such, civil law itself is obliged to recognize and protect. “Those who have recourse to conscientious objection must be protected not only from legal penalties but also from any negative effects on the legal, disciplinary, financial and professional plane”.[822]

399.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 부당한 법은 도덕적으로 올곧은 사람들을 곤란에 빠트리는 양심의 문제를 제기한다.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에 협력하도록 요청받을 때 그들은 이를 거부하여야 한다. 그러한 거부는 도덕적인 의무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인간의 기본권은 바로 그 자체로써 국법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양심적인 거부권에 호소하는 사람들은 법적 처벌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뿐 아니라, , 규정, 재정, 직업 차원의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


It is a grave duty of conscience not to cooperate, not even formally, in practices which, although permitted by civil legislation, are contrary to the Law of God. Such cooperation in fact can never be justified, not by invoking respect for the freedom of others nor by appealing to the fact that it is foreseen and required by civil law. No one can escape the moral responsibility for actions taken, and all will be judged by God himself based on this responsibility (cf. Rom 2:6; 14:12).

국법이 인정하더라도 하느님의 법에 위배되는 관습들에 공식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협력하지 않아야 할 중대한 양심의 의무가 있다. 사실 그러한 협력은, 다른 사람의 자유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고 해도, 또 그것이 국법으로 상정되고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에 호소한다 해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러한 책임에 기초하여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로마 2,6; 14,12 참조).



d. The right to resist / 저항권


400. Recognizing that natural law is the basis for and places limits on positive law means admitting that it is legitimate to resist authority should it violate in a serious or repeated manner the essential principles of natural law. Saint Thomas Aquinas writes that “one is obliged to obey ... insofar as it is required by the order of justice”.[823] Natural law is therefore the basis of the right to resistance.

400. 자연법은 실정법의 토대이며 실정법을 제한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은, 권위가 자연법의 근본 원리를 심각하게 또는 반복적으로 침해한다면 그러한 권위에 대한 저항은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정의의 질서가 요구하는 한 인간은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법은 저항권의 기초이다.


There can be many different concrete ways this right may be exercised; there are also many different ends that may be pursued. Resistance to authority is meant to attest to the validity of a different way of looking at things, whether the intent is to achieve partial change, for example, modifying certain laws, or to fight for a radical change in the situation.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다. 또한 추구 목적도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다. 권위에 대한 저항은, 그 목적이 예를 들면 특정 법률의 수정과 같은 부분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이든 아니면 근본적인 상황 변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든,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401. The Church's social doctrine indicates the criteria for exercising the right to resistance: “Armed resistance to oppression by political authority is not legitimate, unless all the following conditions are met: 1) there is certain, grave and prolonged violation of fundamental rights, 2) all other means of redress have been exhausted, 3) such resistance will not provoke worse disorders, 4) there is well-founded hope of success; and 5) it is impossible reasonably to foresee any better solution”.[824] Recourse to arms is seen as an extreme remedy for putting an end to a “manifest, long-standing tyranny which would do great damage to fundamental personal rights and dangerous harm to the common good of the country”.[825] The gravity of the danger that recourse to violence entails today makes it preferable in any case that passive resistance be practised, which is “a way more conformable to moral principles and having no less prospects for success”.[826]

401. 교회의 사회 교리는 저항권 행사를 위한 기준을 제시한다. “정치 권력의 억압에 대한 저항은 아래의 조건들이 다 함께 충족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무기 사용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1) 기본권이 확실하고 심각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침해를 받을 때, 2) 다른 수단을 모두 사용하고 난 후에, 3) 더 심한 무질서를 유발시킬 우려가 없을 때, 4)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일 때, 5)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더 나은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설 때.” 무력에 대한 의존은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국가의 공동선을 극도로 해치는, 장기간의 명백한 폭군적 압제 종식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처방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폭력 의존에 따르는 위험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어떤 경우에서든 도덕 원칙에 더욱 부합하고 성공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가진 방법소극적 저항 실천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e. Inflicting punishment / 형벌의 부과


402. In order to protect the common good, the lawful public authority must exercise the right and the duty to inflict punishments according to the seriousness of the crimes committed[827]. The State has the twofold responsibility to discourage behaviour that is harmful to human rights and the fundamental norms of civil life, and to repair, through the penal system, the disorder created by criminal activity. In a State ruled by law the power to inflict punishment is correctly entrusted to the Courts: “In defining the proper relationships between the legislative, executive and judicial powers, the Constitutions of modern States guarantee the judicial power the necessary independence in the realm of law”.[828]

402. 공동선을 보호하려면, 합법적인 공권력이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부과할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여야 한다. 국가는 인권과 시민 생활의 근본 규범을 해치는 행위를 막고, 범죄 행위로 야기되는 무질서를 형벌 제도를 통하여 바로잡을 이중의 책임이 있다. 법치 국가에서 형벌을 부과할 권한은 바로 법원에 있다.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하면서 현대 국가의 헌법은 사법권에 법의 영역에서 필요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403. Punishment does not serve merely the purpose of defending the public order and guaranteeing the safety of persons; it becomes as well an instrument for the correction of the offender, a correction that also takes on the moral value of expiation when the guilty party voluntarily accepts his punishment.[829] There is a twofold purpose here. On the one hand, encouraging the re-insertion of the condemned person into society; on the other, fostering a justice that reconciles, a justice capable of restoring harmony in social relationships disrupted by the criminal act committed.

403. 형벌은 국가 질서를 수호하고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목적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형벌은 범죄자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도덕적으로 속죄의 가치를 지니는 교정 도구가 되기도 한다. 교정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의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 행위로 붕괴된 사회관계에 일치를 회복할 수 있는 정의, 화해를 가져다주는 정의를 촉진하는 것이다.


In this regard, the activity that prison chaplains are called to undertake is important, not only in the specifically religious dimension of this activity but also in defence of the dignity of those detained. Unfortunately, the conditions under which prisoners serve their time do not always foster respect for their dignity; and often, prisons become places where new crimes are committed. Nonetheless, the environment of penal institutions offers a privileged forum for bearing witness once more to Christian concern for social issues: “I was ... in prison and you came to me” (Mt 25:35-36).

이러한 면에서 교정 사목자들이 수행하여야 하는 활동은 명백히 종교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의 존엄성 수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불행히도 죄수들의 복역 조건이 언제나 그들의 존엄성 존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감옥은 흔히 새로운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벌 기관의 환경은 사회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증언할 수 있는 탁월한 장이 될 수도 있다. “너희는 내가 ……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404. The activity of offices charged with establishing criminal responsibility, which is always personal in character, must strive to be a meticulous search for truth and must be conducted in full respect for the dignity and rights of the human person; this means guaranteeing the rights of the guilty as well as those of the innocent. The juridical principle by which punishment cannot be inflicted if a crime has not first been proven must be borne in mind.

404. 형사 책임을 분명히 할 의무가 있는 부서들의 활동은 언제나 인간과 관련된 것이므로 진실을 철저히 파헤치는 데 주력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활동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온전히 존중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곧 피해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권리도 보장할 것을 의미한다. 범죄가 먼저 입증되지 않으면 형벌을 내릴 수 없는 사법 원칙을 명심하여야 한다.


In carrying out investigations, the regulation against the use of torture, even in the case of serious crimes, must be strictly observed: “Christ's disciple refuses every recourse to such methods, which nothing could justify and in which the dignity of man is as much debased in his torturer as in the torturer's victim”.[830] International juridical instruments concerning human rights correctly indicate a prohibition against torture as a principle which cannot be contravened under any circumstances.

수사를 할 때는 중범죄의 경우에도 고문 사용 금지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고문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한다. 고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고문 희생자의 인간 존엄만큼이나 고문자의 인간 존엄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인권 관련 국제법 문서들은 고문 금지를 어떤 상황에서도 위반해서는 안 될 원칙으로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Likewise ruled out is “the use of detention for the sole purpose of trying to obtain significant information for the trial”.[831] Moreover, it must be ensured that “trials are conducted swiftly: their excessive length is becoming intolerable for citizens and results in a real injustice”.[832]

마찬가지로, “재판을 위해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구금을 하는 것도 금지된다. 또한 재판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국민들이 견디기 힘들고 실질적인 불의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재판은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Officials of the court are especially called to exercise due discretion in their investigations so as not to violate the rights of the accused to confidentiality and in order not to undermine the principle of the presumption of innocence. Since even judges can make mistakes, it is proper that the law provide for suitable compensation for victims of judicial errors.

법원 관리들은 특히 조사를 할 때에 올바른 판단력을 행사하여, 비밀을 보장받을 피고의 권리와 무죄 추정 원칙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재판관도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재판 오류의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다.


405. The Church sees as a sign of hope “a growing public opposition to the death penalty, even when such a penalty is seen as a kind of ‘legitimate defence' on the part of society. Modern society in fact has the means of effectively suppressing crime by rendering criminals harmless without definitively denying them the chance to reform”.[833] Whereas, presuming the full ascertainment of the identity and responsibility of the guilty party, the traditional teaching of the Church does not exclude the death penalty “when this is the only practicable way to defend the lives of human beings effectively against the aggressor”.[834] Bloodless methods of deterrence and punishment are preferred as “they better correspond to the concrete conditions of the common good and are more in conformity to the dignity of the human person”.[835] The growing number of countries adopting provisions to abolish the death penalty or suspend its application is also proof of the fact that cases in which it is absolutely necessary to execute the offender “are very rare, if not practically non-existent”.[836] The growing aversion of public opinion towards the death penalty and the various provisions aimed at abolishing it or suspending its application constitute visible manifestations of a heightened moral awareness.

405. 교회는 사회적 측면에서 보아 사형을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하는 경우에조차도, 사형제도에 대한 공적인 반대가 커지고 있는 징후를 희망의 징표로 보고 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는 범죄자들의 갱생 기회를 결정적으로 박탈하지 않고도 그들이 해를 끼칠 수 없게 함으로써 범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다.”833> 반면에,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범인의 정체와 책임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추정되는 경우, “불의한 공격자에게서 인간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법이 사형뿐이라면 사형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류와 형벌 같은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이 공동선의 실제 조건에 더 잘 부합하고 인간의 품위에 더욱 적합하므로 이러한 방법들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거나 그 집행을 중지하는 법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범죄자를 사형해야 할 경우가 실제로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여론이 점점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사형제도 폐지와 집행 중지를 위한 여러 규정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도덕의식의 증대를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






406. The Encyclical Centesimus Annus contains an explicit and articulate judgment with regard to democracy: “The Church values the democratic system inasmuch as it ensures the participation of citizens in making political choices, guarantees to the governed the possibility both of electing and holding accountable those who govern them, and of replacing them through peaceful means when appropriate. Thus she cannot encourage the formation of narrow ruling groups which usurp the power of the State for individual interests or for ideological ends. Authentic democracy is possible only in a State ruled by law, and on the basis of a correct conception of the human person. It requires that the necessary conditions be present for the advancement both of the individual through education and formation in true ideals, and of the ‘subjectivity' of society through the creation of structures of participation and shared responsibility”.[837]

406. 회칙 백주년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하고 분명한 판단을 담고 있다.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데, 이 체제는 확실히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 준다. 따라서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법치 국가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올바른 인간관의 기초 위에 성립한다. 민주주의는 참된 이상에 대한 교육과 양성을 통한 개인의 향상을 위해서나 참여와 공동 책임 구조의 설립을 통한 사회 주체성의 향상을 위해서도 필요조건들이 채워지기를 요구한다.”



a. Values and democracy / 가치와 민주주의


407. An authentic democracy is not merely the result of a formal observation of a set of rules but is the fruit of a convinced acceptance of the values that inspire democratic procedures: the dignity of every human person, the respect of human rights, commitment to the common good as the purpose and guiding criterion for political life. If there is no general consensus on these values, the deepest meaning of democracy is lost and its stability is compromised.

407. 참된 민주주의는 단지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정치 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열매이다.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없다면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상실되고, 그 안정성도 위태로워진다.


The Church's social doctrine sees ethical relativism, which maintains that there are no objective or universal criteria for establishing the foundations of a correct hierarchy of values, as one of the greatest threats to modern-day democracies. “Nowadays there is a tendency to claim that agnosticism and skeptical relativism are the philosophy and the basic attitude which correspond to democratic forms of political life. Those who are convinced that they know the truth and firmly adhere to it are considered unreliable from a democratic point of view, since they do not accept that truth is determined by the majority, or that it is subject to variation according to different political trends. It must be observed in this regard that if there is no ultimate truth to guide and direct political action, then ideas and convictions can easily be manipulated for reasons of power. As history demonstrates, a democracy without values easily turns into open or thinly disguised totalitarianism”.[838] Democracy is fundamentally “a ‘system' and as such is a means and not an end. Its ‘moral' value is not automatic, but depends on conformity to the moral law to which it, like every other form of human behaviour, must be subject: in other words, its morality depends on the morality of the ends which it pursues and of the means which it employs”.[839]

교회의 사회 교리는 윤리 상대주의를 현대 민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 가운데 하나로 본다. 윤리 상대주의는 올바른 가치 서열의 토대를 세우기 위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은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가지론과 회의적 상대주의가 민주 국가 형태에서 발견되는 철학이며 기본자세라고 생각하고,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 진리에 집착하는 이들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진리가 시민 대다수에 의하여 결정되거나 정치적 변천의 다양성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정치 활동을 이끌어가고 통제할 궁극적 진리가 없다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이념과 확신을 도구처럼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끝으로, 원칙 없는 민주주의는 역사가 증명하듯이, 쉽게 공공연하거나 위장된 전체주의로 변한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체제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도덕적가치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형태의 인간행위들과 마찬가지로, 이 체제가 당연히 종속되어야 할 도덕률에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의 도덕성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들과 동원하는 수단들이 지닌 도덕성에 달려있다.”



b. Institutions and democracy / 제도와 민주주의


408. The Magisterium recognizes the validity of the principle concerning the division of powers in a State: “it is preferable that each power be balanced by other powers and by other spheres of responsibility which keep it within proper bounds. This is the principle of the ‘rule of law', in which the law is sovereign, and not the arbitrary will of individuals”.[840]

408. 교도권은 국가의 권력 분립 원칙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각 권력은 같은 목적에 봉사하는 다른 기능들과 다른 권력들로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개인들의 독단적 의사가 아니라 법이 다스리는 법치의 원리이다.”


In the democratic system, political authority is accountable to the people. Representative bodies must be subjected to effective social control. This control can be carried out above all in free elections which allow the selection and change of representatives. The obligation on the part of those elected to give an accounting of their work which is guaranteed by respecting electoral terms is a constitutive element of democratic representation.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치 권위는 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 대의 기구들은 효과적인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통제는 무엇보다도 대표를 선출하고 교체할 수 있게 하는 자유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선출된 사람들의 활동은 임기 존중으로 보장되며, 그들의 활동 보고 의무는 민주적 대표성의 구성 요소이다.


409. In their specific areas (drafting laws, governing, setting up systems of checks and balances), elected officials must strive to seek and attain that which will contribute to making civil life proceed well in its overall course.[841]

409. 선출된 공직자들은, 각자의 특정 영역(입법, 통치, 견제와 균형 제도 확립)에서, 국민 생활이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모색하고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Those who govern have the obligation to answer to those governed, but this does not in the least imply that representatives are merely passive agents of the electors. The control exercised by the citizens does not in fact exclude the freedom that elected officials must enjoy in order to fulfil their mandate with respect to the objectives to be pursued. These do not depend exclusively on special interests, but in a much greater part on the function of synthesis and mediation that serve the common good, one of the essential and indispensable goals of political authority.

통치자들은 피통치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의무가 있으나, 그렇다고 대표들이 단순히 선거권자들의 피동적 대리인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국민들의 통제는 사실상 선출된 공직자들이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위임받은 것들을 수행할 때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마저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목표들은 전적으로 특수한 이해관계에 좌우되기 보다는, 정치 권위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목적의 하나인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중재와 통합의 역할에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



c. Moral components of political representation / 정치적 대표성의 도덕적 요소


410. Those with political responsibilities must not forget or underestimate the moral dimension of political representation, which consists in the commitment to share fully in the destiny of the people and to seek solutions to social problems. In this perspective, responsible authority also means authority exercised with those virtues that make it possible to put power into practice as service [842] (patience, modesty, moderation, charity, efforts to share), an authority exercised by persons who are able to accept the common good, and not prestige or the gaining of personal advantages, as the true goal of their work.

410. 정치 책임자들은 정치적 대표성의 도덕적 차원, 국민의 운명과 온전히 함께하며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망각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책임 있는 권위란 봉사의 정신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덕목들(인내, 겸손, 온건, 애덕, 함께하려는 노력)에 따라 행사되는 권위, 명예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활동의 참된 목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위를 의미한다.


411. Among the deformities of the democratic system, political corruption is one of the most serious [843] because it betrays at one and the same time both moral principles and the norms of social justice. It compromises the correct functioning of the State, having a negative influenc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ose who govern and the governed. It causes a growing distrust with respect to public institutions, bringing about a progressive disaffection in the citizens with regard to politics and its representatives, with a resulting weakening of institutions. Corruption radically distorts the role of representative institutions, because they become an arena for political bartering between clients' requests and governmental services. In this way political choices favour the narrow objectives of those who possess the means to influence these choices and are an obstacle to bringing about the common good of all citizens.

411.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는 도덕 원칙과 사회 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인 부패이다. 정치적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공 기관들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키고, 차츰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야기한다. 부패는 대의 기관들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왜냐하면 대의 기관들은 의뢰인들의 청탁과 국가 공무원들 사이에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협한 목표에 부합하는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는 모든 국민의 공동선 달성에 걸림돌이 된다.


412. As an instrument of the State, public administration at any level national, regional, community is oriented towards the service of citizens: “Being at the service of its citizens, the State is the steward of the people's resources, which it must administer with a view to the common good”.[844] Excessive bureaucratization is contrary to this vision and arises when “institutions become complex in their organization and pretend to manage every area at hand. In the end they lose their effectiveness as a result of an impersonal functionalism, an overgrown bureaucracy, unjust private interests and an all-too-easy and generalized disengagement from a sense of duty”.[845] The role of those working in public administration is not to be conceived as impersonal or bureaucratic, but rather as an act of generous assistance for citizens, undertaken with a spirit of service.

412. 국가의 도구인 공공 행정 기관은 국가나 지역, 공동체 등 모든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국가는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는 관리자이므로, 이 자산을 공공선을 위하여 관리하여야 한다.”여러 기관들의 조직이 더욱 복잡해질수록 또 그 기관들이 모든 분야를 관리하려고 들면 들수록이러한 정신에 위배되는 지나친 관료주의가 생겨난다. “결국 그러한 계획이나 사업들은 비인격적인 기능주의, 과도한 관료주의, 불의한 사리사욕, 안이하고도 일반화된 의무감의 해이로 그 효율성을 상실하고 만다.” 공공 행정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비인격적이거나 관료주의적인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며, 봉사의 정신으로 국민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지원하는 행위로 인식되어야 한다.



d. Instruments for political participation / 정치 참여의 도구


413. Political parties have the task of fostering widespread participation and making public responsibilities accessible to all. Political parties are called to interpret the aspirations of civil society, orienting them towards the common good,[846] offering citizens the effective possibility of contributing to the formulation of political choices. They must be democratic in their internal structure, and capable of political synthesis and planning.

413. 정당들은 폭넓은 참여를 촉진하고 공공의 책임이 모든 사람에게 미칠 수 있게 할 임무가 있다. 정당들은 시민 사회의 열망을 간파하고, 그 열망들이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하며, 국민들이 정치적 선택을 내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을 제공하도록 요구받는다. 정당의 내부 조직은 민주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통합과 입안 능력이 있어야 한다.


Another instrument of political participation is the referendum, whereby a form of direct access to political decisions is practised. The institution of representation in fact does not exclude the possibility of asking citizens directly about the decisions of great importance for social life.

또 다른 정치 참여 도구는 정치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형태인 국민투표이다. 사실상 대표 제도는 사회생활에서 지극히 중요한 결정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 Information and democracy / 정보와 민주주의


414. Information is among the principal instruments of democratic participation. Participation without an understanding of the situation of the political community, the facts and the proposed solutions to problems is unthinkable. It is necessary to guarantee a real pluralism in this delicate area of social life, ensuring that there are many forms and instruments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It is likewise necessary to facilitate conditions of equality in the possession and use of these instruments by means of appropriate laws. Among the obstacles that hinder the full exercise of the right to objectivity in information,[847] special attention must be given to the phenomenon of the news media being controlled by just a few people or groups. This has dangerous effects for the entire democratic system when this phenomenon is accompanied by ever closer ties between governmental activity and the financial and information establishments.

414. 정보는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정치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모르고서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 복잡한 사회생활 영역에서 정보와 의사소통을 위한 여러 형태의 도구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실질적인 다원주의를 보장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법률을 통해서 이들 도구를 공평하게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가운데,. 특별히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 미디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정치 활동과 금융 정보 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지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


415. The media must be used to build up and sustain the human community in its different sectors: economic, political, cultural, educational and religious.[848] “The information provided by the media is at the service of the common good. Society has a right to information based on truth, freedom, justice and solidarity”.[849]

415. 대중매체는 인간 공동체의 여러 분야, 곧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종교에서 인간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에 이용되어야 한다.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The essential question is whether the current information system is contributing to the betterment of the human person; that is, does it make people more spiritually mature, more aware of the dignity of their humanity, more responsible or more open to others, in particular to the neediest and the weakest. A further aspect of great importance is the requisite that new technologies respect legitimate cultural differences.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의 정보 체계가 인간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그것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하고, 그들의 인간 존엄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하며, 다른 사람들, 특히 가장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고, 그들에게 더욱 열려 있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은 새로운 기술들이 정당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도록 할 필요성이다.


416. In the world of the media the intrinsic difficulties of communications are often exacerbated by ideology, the desire for profit and political control, rivalry and conflicts between groups, and other social evils. Moral values and principles apply also to the media. “The ethical dimension relates not just to the content of communication (the message) and the process of communication (how the communicating is done) but to fundamental structural and systemic issues, often involving large questions of policy bearing upon the distribution of sophisticated technology and product (who shall be information rich and who shall be information poor?)”.[850]

416. 대중매체의 세계에서는 흔히 이데올로기, 이익 추구, 정치적 통제, 집단 간의 경쟁과 알력, 기타 사회적 악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분야 고유의 어려움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 가치들과 원리들은 대중매체에도 적용된다. “윤리 차원은 커뮤니케이션의 내용(메시지)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전달 방법)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 구조나 제도 문제와도 관련된다. 여기에는 흔히 첨단 기술과 제품의 분배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정책 문제(누가 정보를 많이 가지게 될 것이며 누가 적게 가지게 될 것인가)가 포함된다.”


In all three areas the message, the process and structural issues one fundamental moral principle always applies: the human person and the human community are the end and measure of the use of the media. A second principle is complementary to the first: the good of human beings cannot be attained independently of the common good of the community to which they belong.[851] It is necessary that citizens participate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concerning media policies. This participation, which is to be public, has to be genuinely representative and not skewed in favour of special interest groups when the media are a money-making venture.[852]

메시지, 전달, 구조 문제라는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언제나 적용되는 근본적인 윤리 원칙의 첫 번째는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대중매체 활용의 목적이며 척도라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는 두 번째 원칙은 인간의 선익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과 별도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중매체 정책에 관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참여는 공개적이어야 하며, 대중매체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일 때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잘못 이용되지 않고 진정 민의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a. Value of civil society / 시민 사회의 가치


417. The political community is established to be of service to civil society, from which it originates. The Church has contributed to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olitical community and civil society above all by her vision of man, understood as an autonomous, relational being who is open to the Transcendent. This vision is challenged by political ideologies of an individualistic nature and those of a totalitarian character, which tend to absorb civil society into the sphere of the State. The Church's commitment on behalf of social pluralism aims at bringing about a more fitting attainment of the common good and democracy itself,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solidarity, subsidiarity and justice.

417. 정치 공동체는 그것의 모태인 시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인간을 초월자에게 열려 있는 자율적이고 관계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교회는, 특히 이러한 인간관을 통하여 정치 공동체와 시민 사회를 구분하는 데에 기여해 왔다. 이러한 관점은 시민 사회를 국가 영역 안에 흡수하려는 전제주의적인 정치 이념들과 개인주의적인 정치 이념들의 도전을 받는다. 사회 다원주의를 위한 교회의 노력은 공동선과 민주주의를 더욱 적합한 방식으로, 곧 연대와 보조성, 정의의 원리에 따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Civil society is the sum of relationships and resources, cultural and associative, that are relatively independent from the political sphere and the economic sector. “The purpose of civil society is universal, since it concerns the common good, to which each and every citizen has a right in due proportion”.[853] This is marked by a planning capacity that aims at fostering a freer and more just social life, in which the various groups of citizens can form associations, working to develop and express their preferences, in order to meet their fundamental needs and defend their legitimate interests.

시민 사회는 정치 경제 영역에서 비교적 독립되어 있는 문화적 단체적 자원과 관계의 총체이다. “국가의 목적은 보편적이며 공동선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서 모든 국민 각자가 적절한 비례에 따라 그 공동선에 대한 권리를 누린다.” 이는 다양한 시민 집단들이 근본 요구를 충족시키고 정당한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우선적 요구를 전개하고 표현할 단체들을 결성할 수 있는, 더욱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생활을 증진하는 데에 목적을 둔 입안 능력을 특징으로 한다.



b. Priority of civil society / 시민 사회의 우선성


418. The political community and civil society, although mutually connected and interdependent, are not equal in the hierarchy of ends. The political community is essentially at the service of civil society and, in the final analysis, the persons and groups of which civil society is composed.[854] Civil society, therefore, cannot be considered an extension or a changing component of the political community; rather, it has priority because it is in civil society itself that the political community finds its justification.

418. 정치 공동체와 시민 사회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고 있지만 목적의 서열은 같지 않다. 정치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시민 단체에 봉사하며, 결과적으로는 시민 단체의 구성원인 개인과 집단에게 봉사한다. 따라서 시민 단체를 정치 공동체의 연장선이나 가변적 구성 요소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 공동체는 시민 사회 안에서 그 정당성을 찾으므로 시민 사회가 정치 공동체에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The State must provide an adequate legal framework for social subjects to engage freely in their different activities and it must be ready to intervene, when necessary and with respect for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so that the interplay between free associations and democratic life may be directed to the common good. Civil society is in fact multifaceted and irregular; it does not lack its ambiguities and contradictions. It is also the arena where different interests clash with one another, with the risk that the stronger will prevail over the weaker.

국가는 사회 주체들이 각종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법적 틀을 마련해 주어야 하며, 보조성의 원리와 관련하여 필요할 때 언제든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결성된 단체들과 민주주의 생활의 상호 작용이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시민 사회는 사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규정된 틀에 얽매여 있지 않아, 자체적 모호성과 모순이 없지 않다. 또한 시민 사회는 서로 다른 이익 단체들이 충돌하는 장이어서, 강자가 약자를 누를 위험이 있다.



c.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 / 보조성의 원리 적용


419. The political community is responsible for regulating its relations with civil society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subsidiarity.[855] It is essential that the growth of democratic life begin within the fabric of society. The activities of civil society above all volunteer organizations and cooperative endeavours in the private-social sector, all of which are succinctly known as the “third sector”, to distinquish from the State and the market represent the most appropriate ways to develop the social dimension of the person, who finds in these activities the necessary space to express himself fully. The progressive expansion of social initiatives beyond the State- controlled sphere creates new areas for the active presence and direct action of citizens, integrating the functions of the State. This important phenomenon has often come about largely through informal means and has given rise to new and positive ways of exercising personal rights, which have brought about a qualitative enrichment of democratic life.

419. 정치 공동체는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시민 단체와 맺고 있는 관계를 조정해 나갈 책임이 있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활동의 성장은 사회 조직 내에서 시작된다. 시민 사회의 활동, 특히 국가나 시장과 구분되어 3부문이라고 알려진 민간 사회 부문의 자원 봉사 단체들과 협력 활동들은 개인이 자신을 충만히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음으로써 개인의 사회적 차원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길이다. 국가 통제 영역을 초월한 사회 활동의 점진적 확대는 국가의 기능을 통합하면서,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다. 이러한 중요한 현상은 흔히 정보 수단을 통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개인의 권리 행사를 위한 새롭고 긍정적인 길을 열어 주어 민주주의 생활을 질적으로 풍부하게 해 주었다.


420. Cooperation, even in its less structured forms, shows itself to be one of the most effective responses to a mentality of conflict and unlimited competition that seems so prevalent today. The relationships that are established in a climate of cooperation and solidarity overcome ideological divisions, prompting people to seek out what unites them rather than what divides them.

420. 완전 조직되지 않은 형태라 하더라도 협력은 현대 사회에 팽배한 무한 경쟁과 대립적 사고에 맞설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의 하나로 드러난다. 협력과 연대의 분위기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이념의 분열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보다는 일치시키는 것을 추구하도록 재촉한다.


Many experiences of volunteer work are examples of great value that call people to look upon civil society as a place where it is possible to rebuild a public ethic based on solidarity, concrete cooperation and fraternal dialogue. All are called to look with confidence to the potentialities that thus present themselves and to lend their own personal efforts for the good of the community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for the good of the weakest and the neediest. In this way, the principle of the “subjectivity of society” is also affirmed.[856]

자원 봉사 활동에 대한 축적된 경험은 사람들이 시민 사회를 연대와 실질적 협력, 형제적 대화에 기초한 공공 윤리를 다시 확립할 수 있는 터전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모든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잠재력에 기대어, 전체 공동체의 선익, 특히 가장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선익을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럴 때에 사회 주체성의 원리도 확인된다.








421. The Second Vatican Council committed the Catholic Church to the promotion of religious freedom. The Declaration Dignitatis Humanae explains in its subtitle that it intends to proclaim “the right of the person and of communities to social and civil freedom in religious matters”. In order that this freedom, willed by God and inscribed in human nature, may be exercised, no obstacle should be placed in its way, since “the truth cannot be imposed except by virtue of its own truth”.[857] The dignity of the person and the very nature of the quest for God require that all men and women should be free from every constraint in the area of religion.[858] Society and the State must not force a person to act against his conscience or prevent him from acting in conformity with it.[859] Religious freedom is not a moral licence to adhere to error, nor as an implicit right to error.[860]

421.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가 종교 자유의 증진에 힘쓰게 하였다.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은 부제를 통하여 종교 문제의 시민적 사회적 자유에 대한 개인과 단체의 권리를 선언하려는 의도를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인간 본성 안에 새겨져 있는 이러한 자유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그 길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진리는 오로지 진리 그 자체의 힘으로 드러날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하느님을 추구하는 본성은 모든 사람이 종교 문제에서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사회와 국가는 개인이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오류를 지지하라는 도덕적 허락도 아니고, 오류를 범하라는 암묵적 권리도 아니다.


422. Freedom of conscience and religion “concerns man both individually and socially”.[861] The right to religious freedom must be recognized in the juridical order and sanctioned as a civil right; [862] nonetheless, it is not of itself an unlimited right. The just limits of the exercise of religious freedom must be determined in each social situation with political prudence, according to the requirements of the common good, and ratified by the civil authority through legal norms consistent with the objective moral order. Such norms are required by “the need for the effective safeguarding of the rights of all citizens and for the peaceful settlement of conflicts of rights, also by the need for an adequate care of genuine public peace, which comes about when men live together in good order and in true justice, and finally by the need for a proper guardianship of public morality”.[863]

422. 양심과 종교의 자유는 인간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연관되는 것이다.”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는 법적 제도 안에서 인정을 받아 국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권리가 그 자체로 무제한의 권리는 아니다. 종교 자유의 행사에 대한 정당한 제한은 사회적 상황에 맞춰 정치적 신중성을 가지고 공동선의 요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며, 객관적 도덕 질서에 부합하는 법률 규범을 통하여 국가 권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규범들은 모든 국민의 화합에 필요한 실질적인 권리 보호를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며, 또 참된 정의 안에서 살아가는 공존 질서인 완벽한 치안 유지를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고, 또 마땅히 수호하여야 할 공공 도덕을 위하여 요청되는 것이다.”


423. Because of its historical and cultural ties to a nation, a religious community might be given special recognition on the part of the State. Such recognition must in no way create discrimination within the civil or social order for other religious groups.[864] The vision of the relations between States and religious organizations promoted by the Second Vatican Council corresponds to the requirements of a State ruled by law and to the norms of international law.[865] The Church is well aware that this vision is not shared by all; the right to religious freedom, unfortunately, “is being violated by many States, even to the point that imparting catechesis, having it imparted, and receiving it become punishable offences”.[866]

423. 종교 공동체는 그 국민과 맺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유대 때문에 국가의 특별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인정이 결코 국가나 사회 질서 안에서 타종교 집단에 대한 차별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증진시킨 국가와 종교 단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법치 국가의 요건들이나 국제법 규범과도 일치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시각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불행히도 종교 자유의 권리가 유린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리교육을 시행하거나, 시행하게 하거나 교리교육을 받는 행위가 형벌을 받는 범죄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a. Autonomy and independence / 자율성과 독립성


424. Although the Church and the political community both manifest themselves in visible organizational structures, they are by nature different because of their configuration and because of the ends they pursue. The Second Vatican Council solemnly reaffirmed that, “in their proper spheres, the political community and the Church are mutually independent and self-governing”.[867] The Church is organized in ways that are suitable to meet the spiritual needs of the faithful, while the different political communities give rise to relationships and institutions that are at the service of everything that is part of the temporal common good. The autonomy and independence of these two realities is particularly evident with regards to their ends.

424. 교회와 정치 공동체 모두 가시적인 유기적 조직으로 드러나지만, 형태나 추구 목적에서 본질상 서로 다르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라고 엄숙히 재천명하였다. 교회는 신자들의 영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알맞은 방식으로 조직되는 반면에, 각종 정치 공동체들은 현세의 공동선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봉사하는 제도와 관계를 발생시킨다. 이 두 실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특히 그 목적과 관련하여 매우 분명하다.


The duty to respect religious freedom requires that the political community guarantee the Church the space needed to carry out her mission. For her part, the Church has no particular area of competence concerning the structures of the political community: “The Church respects the legitimate autonomy of the democratic order and is not entitled to express preferences for this or that institutional or constitutional solution”,[868] nor does it belong to her to enter into questions of the merit of political programmes, except as concerns their religious or moral implications.

종교의 자유를 존중할 의무는 정치 공동체가 교회에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공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한편 교회는 정치 공동체 조직들에 대하여 어떠한 특별한 관할 영역도 없다. “교회는 민주적 질서의 합법적인 자율성을 존중하며, 어떠한 법이나 제도의 형태를 앞으로 내세울 권리가 없다.” 또한 정치적 계획들의 공과를 문제 삼을 권리도 없지만, 그것들의 종교적 도덕적 영향과 관련해서는 예외이다.



b. Cooperation / 협력


425. The mutual autonomy of the Church and the political community does not entail a separation that excludes cooperation. Both of them, although by different titles, serve the personal and social vocation of the same human beings. The Church and the political community, in fact, express themselves in organized structures that are not ends in themselves but are intended for the service of man, to help him to exercise his rights fully, those inherent in his reality as a citizen and a Christian, and to fulfil correctly his corresponding duties. The Church and the political community can more effectively render this service “for the good of all if each works better for wholesome mutual cooperation in a wa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ime and place”.[869]

425. 교회와 정치 공동체의 상호 자율성이 협력을 배제하는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둘 모두 자격은 다르지만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한다. 교회와 정치 공동체는 사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개인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실재 안에 내재된 권리들을 온전히 행사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올바로 수행하도록 돕고자 인간에 대한 봉사를 지향하는 유기적 조직들이다. 교회와 정치 공동체는 장소와 시대의 환경을 고려하며 서로 건실한 협력을 더 잘 하면 할수록, 그 봉사는 더 효과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할 것이다.”


426. The Church has the right to the legal recognition of her proper identity. Precisely because her mission embraces all of human reality, the Church, sensing that she is “truly and intimately linked with mankind and its history”,[870] claims the freedom to express her moral judgment on this reality, whenever it may be required to defend the fundamental rights of the person or for the salvation of souls.[871]

426. 교회는 자신의 고유한 신원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 실재를 포함하는 교회의 사명 때문에, 교회는 인류와 인류 역사에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개인의 기본 권리들을 수호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언제나 인간 실재에 대한 교회의 도덕적 판단을 표현할 자유를 주장한다.


The Church therefore seeks: freedom of expression, teaching and evangelization; freedom of public worship; freedom of organization and of her own internal government; freedom of selecting, educating, naming and transferring her ministers; freedom for constructing religious buildings; freedom to acquire and possess sufficient goods for her activity; and freedom to form associations not only for religious purposes but also for educational, cultural, health care and charitable purposes.[872]

따라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가르침과 복음화의 자유, 공적 예배의 자유, 조직과 교회 내부 통치의 자유, 교회 성직자들을 선발하고 교육하고 임명하며 이동시킬 자유, 교회 건물을 지을 자유, 교회 활동을 위한 충분한 재화를 획득하고 소유할 자유, 그리고 종교적 목적뿐 아니라 교육, 문화, 보건, 자선의 목적을 위한 단체 결성의 자유이다.


427. In order to prevent or attenuate possible conflicts between the Church and the political community, the juridical experience of the Church and the State have variously defined stable forms of contact and suitable instruments for guaranteeing harmonious relations. This experience is an essential reference point for all cases in which the State has the presumption to invade the Church's area of action, impairing the freedom of her activity to the point of openly persecuting her or, vice versa, for cases in which church organizations do not act properly with respect to the State.

427. 교회와 정치 공동체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예방하거나 완화하기 위하여 교회와 국가는 법률적인 경험을 통하여 조화로운 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와 안정된 만남의 형태들을 다양하게 규정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국가가 교회의 활동 영역을 침범하여 교회를 공공연하게 박해할 만큼 교회 활동의 자유를 해치려고 하는 모든 경우에, 또는 반대로 교회 기구들이 국가에 대하여 적절히 행동하지 않는 모든 경우에 근본적인 준거가 된다.



  영한편집 작업 : 박경수(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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